오늘은 그냥 읽어 보고 넘어 갈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환관에 대해서요. 환관이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고자”라는 말이 먼저 아닐까 싶네요..... 우리가 보통 ‘내시’(內侍)라 부르던 사람들인데, 거세(去勢)된 남자들로 궁궐에서 벼슬을 하거나 유력자 밑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말하는 것이죠. 시인(寺人)·엄관(官:奄人)·정신(淨身)·내수(內竪)·중관(中官)·혼시(寺)·환시(宦寺)·환자(宦者)·황문(黃門)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으며, 고대 서(西)아시아 여러 나라와 그리이스,·로마,·인도·그리고 이슬람교(敎) 국가들에서도 있었으나, 그중에서 중국의 환관이 가장 유명하며, 우리나라도 고려 때 송나라의 환관제도를 들여와 조선시대로 이어졌다고 하네요. 하지만 신라 때에도 환관에 대한 기록이 있다고 하더군요.
원래 고려 때 “내시”는 임금 가까이에서 숙위(宿衛)와 근시(近侍)를 하던 직책에 있던 사람들로 다재다능하고 인물이 뛰어난 문벌의 자제들이나, 시문(詩文)·경문(經文)에 능한 문신(文臣)을 임명하였으나, 의종 이후 점차 환관을 임명하여 “내시”의 직책을 대신케 하였다는군요. 대체로 초기의 환관은 그 득세(得勢)와 폐를 막기 위해 잡무와 7품 이상 오르지 못게 하고 정직(正職)에는 임명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는군요.
하지만 권력자의 최측근으로 있다보면 아무래도 부패과 권력형 비리가 생기게 마련이죠. TV에서 사극을 보면 임금이 잠자리에 들면 상궁이 밤새 문 밖에서 지키는 것을 보았을 겁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환관이 밤새 그 자리를 지켰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임금이 비, 빈 또는 후궁들과 관계를 할 때 이상이 있을 때는 즉시 침전에 들어가 거들기도(?) 하였다는군요. 그러니 그런 위치에 있는 환관의 목은 항상 힘이 들어가 있었겠죠. 더군다나 비, 빈 또는 후궁들도 임금을 항상 수행하는 환관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도 하였다는데.....
송나라 때는 임금의 수발을 드는 환관은 임금이 평소 눈여겨 두는 비, 빈 또는 후궁들의 이름을 적은 패를 갖고 있다가 저녁 수라상에 빈 접시에 패를 올려 놓는 답니다. 그러면 임금이 식사후에 마음이 동하면 접시에 얹혀 있는 패 중에 하나를 뒤집어 놓으면 그 패에 적힌 여자가 그날 임금을 모셔야 한다는군요. 그런데 여기서 환관의 술수가 작용하기도 한다던데...... 임금이 선택한 여자가 평소 환관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으면 지금 선택된 여자는 오늘 몸이 안좋다는 등 말을 하고, 대신에 다른 여자(물론 환관과 좀 친분이 있었겠죠)를 추천하기도 한다는 군요. 그러니 아무리 임금과 관계가 있었던 후궁이라도 임금 측근에 있는 환관에게 잘못 보이면 다시는 잠자리에서 임금을 만나기는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임금이 후궁과의 잠자리를 선택하면 왕비에게 알려서 임금이 후궁을 맞이해도 된다는 허락을 하였던 모양입니다. 물론 형식적이긴 하지만 정실 부인의 허락을 득한 후에 첩실의 방에 들어간거죠.
조선시대에도 내시부에 환관을 두고 대전(大殿),·왕비전,·세자궁,·빈궁(嬪宮) 등에서 감선(監膳)·사명(使命) 및 잡무 등을 맡게 하였는데, 종2품의 상선(尙膳)을 비롯해 종9품의 상원(尙苑)에 이르기까지 59명이 관직을 가지고 있었다는군요. 그리고 정부에서는 보통 동성(同姓)에 한하여 양자를 삼도록 되어 있었으나, 환관에게는 이성(異姓)의 양자를 택할 수도 있게 하였으며, 환관도 처첩(妻妾)을 거느리는 경우가 있었답니다. 예전에 제가 올린 글중에 환관이 양자로 들여 환관을 삼은 자가 거세를 하지 않은 남자여서 궁중에서 문제가 생겼다고 적은 것이 있었죠.
하여튼 이러한 환관제도는 1894년(고종 31)의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으며, 지금 서울 효자동(孝子洞)의 명칭은 원래 환관인 화자가 많이 산다 해서 화자동이라 하다가 후에 효자동으로 고쳤다는군요.
그런데 이 환관을 생산하는 방법이 좀 잔인하답니다. 예전에 먹을 것이 넉넉지 못했던 시절에 어느 마을 누구 아들이 환관이 되어 권력의 그늘을 맛보게 되면 너도나도 자식 팔아 덕을 보려고 거세를 하기도 하였답니다. 지금의 중국땅에 있었던 은나라, 한나라 등에서는 전쟁 포로, 또는 죄인들에게 궁형을 가한후에 환관으로 데려다 쓰기도 하였다는데, 점차 권력의 그늘에 들어서면서 선택되어지는 직업이 되어버린거죠.
하지만 환관이 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거죠. 온전히 있는 생살 덩어리를 잘라내는 것인데......
수술 전에 먼저 요즘의 수술동의서 같은 "혼서(婚書)"라는 서약서를 작성하고, 수술 전에 밀실로 들어가 3-4일 정도를 음식도 먹지 않은 채 기다린답니다. 그리고 거세를 하는 사람인 "도자장(刀子匠)" 과 도자장의 제자들이 거세 당하는 사람의 다리와 허리를 붙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한 후, 매운 고추를 끓인 뜨거운 물로 수술 부위를 깨끗이 닦아내는 방법으로 마취를 하게 하고, 낫처럼 생긴 수술칼로 음낭과 음경을 한꺼번에 잘라낸답니다.
잘라낸 자리에 노출된 요도(尿道)는 밀랍으로 만든 침(針) 모양의 것으로 단단히 틀어막고, 상처 부위는 찬물에 담근 종이를 덮어 지혈(止血)을 하고 상처를 적당하게 처리한 후 휴식을 취하게 되는데 수술후 3일간은 요도를 막아 놓았기 때문에 물을 못마시게 한다는군요.
그리고 3일후에 요도에 박아 놓은 밀납침을 뽑아내게 되는데, 이때 소변이 분수처럼 나오면 수술이 잘된 것이라네요. 그런데 만에 하나 요도가 막혀 소변이 안나오면 그냥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군요.
이 때 잘라낸 음경은 보(寶)라고 부르는데, 일단 작은 밀폐된 용기에 담아서 썩지 않도록 말려서 보관한답니다. 환관이 될 때나 승진할 경우 거세한 증거물로 보를 보여 주었다는군요. 그리고 환관이 죽었을 경우 이 보를 원래 잘라낸 자리에 붙여서 매장을 하였다니까요.
하지만 위와 같은 방법은 그래도 정식으로 환관이 되기 위해 거세를 하는, 정식 성형외과에서 하는 거고, 돈 없이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수술은 그냥 젖은 재 위에 짚을 깔고 아편 등으로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 후에 거세를 하고는 지혈과 요도가 막히는 것 조차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였다는군요. 그러다 보니 잘라낸 음경(보)은 제대로 간수할 수도 없었고.....
그래서 환관이 되고 나서도 때가 되면 다른 환관의 보를 빌려서 증거로 삼기도 하였다는군요.
그리고 환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17세 이전에 거세를 하였다는데, 음양의 이치를 알고 난 후에 거세를 하면 과거의 기분을 못잊어서 대궐내 여자들과 변태적인 행위로 문제가 생기기도 하였답니다.
원래 고려 때 “내시”는 임금 가까이에서 숙위(宿衛)와 근시(近侍)를 하던 직책에 있던 사람들로 다재다능하고 인물이 뛰어난 문벌의 자제들이나, 시문(詩文)·경문(經文)에 능한 문신(文臣)을 임명하였으나, 의종 이후 점차 환관을 임명하여 “내시”의 직책을 대신케 하였다는군요. 대체로 초기의 환관은 그 득세(得勢)와 폐를 막기 위해 잡무와 7품 이상 오르지 못게 하고 정직(正職)에는 임명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는군요.
하지만 권력자의 최측근으로 있다보면 아무래도 부패과 권력형 비리가 생기게 마련이죠. TV에서 사극을 보면 임금이 잠자리에 들면 상궁이 밤새 문 밖에서 지키는 것을 보았을 겁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환관이 밤새 그 자리를 지켰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임금이 비, 빈 또는 후궁들과 관계를 할 때 이상이 있을 때는 즉시 침전에 들어가 거들기도(?) 하였다는군요. 그러니 그런 위치에 있는 환관의 목은 항상 힘이 들어가 있었겠죠. 더군다나 비, 빈 또는 후궁들도 임금을 항상 수행하는 환관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도 하였다는데.....
송나라 때는 임금의 수발을 드는 환관은 임금이 평소 눈여겨 두는 비, 빈 또는 후궁들의 이름을 적은 패를 갖고 있다가 저녁 수라상에 빈 접시에 패를 올려 놓는 답니다. 그러면 임금이 식사후에 마음이 동하면 접시에 얹혀 있는 패 중에 하나를 뒤집어 놓으면 그 패에 적힌 여자가 그날 임금을 모셔야 한다는군요. 그런데 여기서 환관의 술수가 작용하기도 한다던데...... 임금이 선택한 여자가 평소 환관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으면 지금 선택된 여자는 오늘 몸이 안좋다는 등 말을 하고, 대신에 다른 여자(물론 환관과 좀 친분이 있었겠죠)를 추천하기도 한다는 군요. 그러니 아무리 임금과 관계가 있었던 후궁이라도 임금 측근에 있는 환관에게 잘못 보이면 다시는 잠자리에서 임금을 만나기는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임금이 후궁과의 잠자리를 선택하면 왕비에게 알려서 임금이 후궁을 맞이해도 된다는 허락을 하였던 모양입니다. 물론 형식적이긴 하지만 정실 부인의 허락을 득한 후에 첩실의 방에 들어간거죠.
조선시대에도 내시부에 환관을 두고 대전(大殿),·왕비전,·세자궁,·빈궁(嬪宮) 등에서 감선(監膳)·사명(使命) 및 잡무 등을 맡게 하였는데, 종2품의 상선(尙膳)을 비롯해 종9품의 상원(尙苑)에 이르기까지 59명이 관직을 가지고 있었다는군요. 그리고 정부에서는 보통 동성(同姓)에 한하여 양자를 삼도록 되어 있었으나, 환관에게는 이성(異姓)의 양자를 택할 수도 있게 하였으며, 환관도 처첩(妻妾)을 거느리는 경우가 있었답니다. 예전에 제가 올린 글중에 환관이 양자로 들여 환관을 삼은 자가 거세를 하지 않은 남자여서 궁중에서 문제가 생겼다고 적은 것이 있었죠.
하여튼 이러한 환관제도는 1894년(고종 31)의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으며, 지금 서울 효자동(孝子洞)의 명칭은 원래 환관인 화자가 많이 산다 해서 화자동이라 하다가 후에 효자동으로 고쳤다는군요.
그런데 이 환관을 생산하는 방법이 좀 잔인하답니다. 예전에 먹을 것이 넉넉지 못했던 시절에 어느 마을 누구 아들이 환관이 되어 권력의 그늘을 맛보게 되면 너도나도 자식 팔아 덕을 보려고 거세를 하기도 하였답니다. 지금의 중국땅에 있었던 은나라, 한나라 등에서는 전쟁 포로, 또는 죄인들에게 궁형을 가한후에 환관으로 데려다 쓰기도 하였다는데, 점차 권력의 그늘에 들어서면서 선택되어지는 직업이 되어버린거죠.
하지만 환관이 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거죠. 온전히 있는 생살 덩어리를 잘라내는 것인데......
수술 전에 먼저 요즘의 수술동의서 같은 "혼서(婚書)"라는 서약서를 작성하고, 수술 전에 밀실로 들어가 3-4일 정도를 음식도 먹지 않은 채 기다린답니다. 그리고 거세를 하는 사람인 "도자장(刀子匠)" 과 도자장의 제자들이 거세 당하는 사람의 다리와 허리를 붙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한 후, 매운 고추를 끓인 뜨거운 물로 수술 부위를 깨끗이 닦아내는 방법으로 마취를 하게 하고, 낫처럼 생긴 수술칼로 음낭과 음경을 한꺼번에 잘라낸답니다.
잘라낸 자리에 노출된 요도(尿道)는 밀랍으로 만든 침(針) 모양의 것으로 단단히 틀어막고, 상처 부위는 찬물에 담근 종이를 덮어 지혈(止血)을 하고 상처를 적당하게 처리한 후 휴식을 취하게 되는데 수술후 3일간은 요도를 막아 놓았기 때문에 물을 못마시게 한다는군요.
그리고 3일후에 요도에 박아 놓은 밀납침을 뽑아내게 되는데, 이때 소변이 분수처럼 나오면 수술이 잘된 것이라네요. 그런데 만에 하나 요도가 막혀 소변이 안나오면 그냥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군요.
이 때 잘라낸 음경은 보(寶)라고 부르는데, 일단 작은 밀폐된 용기에 담아서 썩지 않도록 말려서 보관한답니다. 환관이 될 때나 승진할 경우 거세한 증거물로 보를 보여 주었다는군요. 그리고 환관이 죽었을 경우 이 보를 원래 잘라낸 자리에 붙여서 매장을 하였다니까요.
하지만 위와 같은 방법은 그래도 정식으로 환관이 되기 위해 거세를 하는, 정식 성형외과에서 하는 거고, 돈 없이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수술은 그냥 젖은 재 위에 짚을 깔고 아편 등으로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 후에 거세를 하고는 지혈과 요도가 막히는 것 조차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였다는군요. 그러다 보니 잘라낸 음경(보)은 제대로 간수할 수도 없었고.....
그래서 환관이 되고 나서도 때가 되면 다른 환관의 보를 빌려서 증거로 삼기도 하였다는군요.
그리고 환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17세 이전에 거세를 하였다는데, 음양의 이치를 알고 난 후에 거세를 하면 과거의 기분을 못잊어서 대궐내 여자들과 변태적인 행위로 문제가 생기기도 하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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