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식들의 모음

바다에서 건져 올린 불상들을 모신 보문사.

노을진하늘 2002. 4. 15. 20:30
김포에서 강화대교를 건너 강화읍에서 308번 지방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냉정(冷井-찬 우물)을 지나 외포리라는 강화 서쪽 작은 포구에 다다르게 됩니다. 여기서 도선(渡船)에 차를 의지하여 10여분 가면 석모도라는 섬이 나오게 되죠.
참 308번 지방도로 달리다 만나게 되는 냉정이라는 우물의 물은 고려 고종이 원나라 침략을 피해 강화도에 피신했을 때 마시던 것이며, 조선 말 안동김씨 김좌근에 의해서 임금이 된 강화도령(철종)이 외가에 갈 때마다 봉녀와 사랑을 속삭이던 우물이라고 하더군요. 물론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우물물을 마셨을거구요.

각설하고, 석모도에 배를 내려 섬의 서쪽으로 달리다 보면 산봉우리가 바위로 뒤덮인 산 중턱에 자리한 보문사라는 절을 만나게 됩니다. 석모도가 강화군 삼산면이라는 행정구역에 속해 있는데 이 작은 섬에 해명산, 상봉산, 상주산의 세개의 산이 있어 삼산면이라 부르게 되었다는군요, 그리고 보문사는 상봉산과 해명산 사이에 위치하고 있고, 특히 절이 자리한 곳을 관음보살이 상주한다는 보타낙가산에서 따와 낙가산이라고 부르고 있답니다. 물론 절이 생겨난 후에 붙여진 이름이죠.

이 보문사는 예전에 육영수 여사가 자주 다니던 절이어서 더욱 유명한 곳이기도 하답니다. 지금 보면 지은지 얼마되지 않은 모습의 사찰이지만, 원래는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한 절이라는군요.

선덕여왕 4년(635)에 한 어부가 그물을 던졌더니, 그물에 사람 모양의 돌덩이 22개가 걸려 오길래 돌이 걸려 올라온 의미를 알지 못하는 어부는 돌덩이를 바다에 버렸죠. 그리고 다시 그물을 던졌는데 이번에도 그 돌덩이들이 올라온거죠. 아마 일진이 더럽다라고 생각한 어부는 돌덩이들을 바다에 버리고 그냥 집으로 돌아 왔었답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서, 어부에게 야단을 치기를 “낮에 그물에 걸렸던 돌덩이는 천축국에서 보내온 귀중한 불상들인데 바다에 두번이나 버렸다며, 내일 다시 그곳에서 불상을 건져 명산에 모셔라”라고 하더랍니다.

다음 날, 22개의 불상을 건져올린 어부는 꿈 속에서 노승이 당부한 대로 명산이 낙가산으로 불상을 옮기던중, 현재의 보문사 경내에 있는 석굴 앞에 다다르자, 갑자기 불상이 무거워져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더랍니다. 어부가 생각하길 이 석굴이 불상을 모실 성스러운 장소린 것 같아 굴 안에 단을 만들어 모시게 되었다고 하네요.
자연석으로 된 석굴안에는 23나한이 모셔져 있는데 창건 당시 바다에서 건져올린 것은 아니고 최근에 봉안된 것들이라고 하던데......
차라리 석굴앞에 있는 600여년된 향나무가 절의 역사를 차곡차곡 간직하였다가 향내음과 함께 풀어 주는 것 같아 보기에 좋더라구요,

처음에는 석굴 사원으로 시작된 사찰이 이제는 대웅전 옆으로 난 계단을 400개나 밟고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 눈썹바위 아래 거대한 마애불로 더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마애불도 지난 세기에 조성된 것이지만 짧은 세월에 어떤 많은 효험을 보였는지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서 봉축을 기원하고 있구요. 그리고 마애불 옆 매점에서 바라보는 서해 바다는 어느 쪽을 보아도 멋있는 모습으로 보이구요.

절을 못미쳐 어유정 마을을 가는 길에는 아직도 많은 염전들이 남아있어 아이들 공부에도 좋은 곳이구요.

사족을 달자면, 예전에는 사찰들의 모습이 그래도 고즈넉하고 마음에서 뭔가를 느끼게 하는 모습들이었었는데, 요즘 어떤 곳에 가보게 되면 꼭 일류 조경사가 조경을 해 놓은 듯한, 사람의 손길을 너무 타서인가 가식적이고 너무나 인위적인 사찰들을 가끔 보게 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