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식들의 모음

유배되어 가며 음식을 먹던 고개... 수라리재.

노을진하늘 2002. 9. 22. 21:18
경기도 고양에 있는 공양왕릉이 도굴되었다고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었죠? 이런 보도가 나온 후에 공양왕릉을 다시 가보았더니 도굴 흔적이 남아 있는 곳에 잔디를 새로 입혀 놓았더라구요. 하긴 예전에도 별로 대접을 못받던 왕릉이었으니......

고려의 마지막 임금이자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에 의해 임금의 위에서 1392년 폐위된 공양왕이 원주 부론면에 유배되었다가 개성과 가까운 곳이라고 하여 1392년 음력 8월 고성군 간성으로 옮겼다가 삼척으로 다시 이동되어 1394년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은 예전에 말씀 드렸구요. 그런데 이 공양왕과 관련된 지명이 강원도 영월 땅에 남아 있는 곳이 있어 적어볼까 하구요.

강원도 영월에서 정선, 태백을 향해 가다보면 31번 국도와 38번 국도가 갈라지는 석항(石項)이라는 곳을 지나게 됩니다. 태백선 철도 석항역이 있는 곳으로 영월군 중동면 석항리 이죠. 옛날에 돌항소(乭項所)라는 천민집단 구역이 있어 “돌 석”자를 사용하여 그런 이름을 얻었다 하네요. 이 석항역이 예전에는 옥동탄광에서 산을 넘어오는 케이블카를 통해 석탄이 가득 쌓여있는 그런 역이었지만 이제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는 케이블카은 아니고 버킷엘리베이터의 버킷을 케이블에 연결해 놓은 형태랍니다. 하여간 어린 시절 이곳을 지날 때 신기한 마음으로 쳐다보곤하였는데......

하여간 이 석항에서 국도가 갈라져 38번 국도는 남한에서는 제일 높다는 두문동재(1,268m)를 지나 태백에 닿게 되구요. 31번 국도는 수라리재라는 고개를 넘어 태백으로 향하게 됩니다. 이 수라리재는 석항 삼거리에서 조금만 지나면 고개가 시작되어 지는데 해발 530m로 급커브가 계속되어지는 길이죠. 예전에 저도 이곳을 참 많이 지나다니던 곳인데..... 이곳을 지나면 저의 외가가 나오거든요.

이런 인연으로 참 많이도 다닌 고개인데 예전에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버스를 타면 멀미로 고생하던 생각이 나서 요즘은 이 고개를 자주 안넘게 되고 영월에서 고씨동굴 앞을 지나 김삿갓 묘를 지나는 길을 택해서 가곤 한답니다.

참 공양왕과 관련된 글을 적는다면서 다른 곳으로 갔네요. 어린시절 이야기로.....
이 수라리재가 공양왕과 관련이 있거든요. 공양왕이 삼척으로 유배를 가면서 이 고갯마루에서 수라(식사)를 드셨다고 해서 수라리재라는 지명이 남아 있답니다. 그런데 좀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공양왕이 강원도 원주에서 강원도 고성군 간성을 거쳐 삼척 궁촌으로 갔으면 이곳을 지날 일이 없는데...... 글쎄요. 일부러 빙 돌아서 간건지..... 하여간 무슨 사연이 있었겠죠. 그리고 이곳 영월은 폐위된 임금과의 인연이 많은 곳이기도 하구요.

지금은 국도 31호선이 지나는 수라리재도 포장이 되었고 근처 망경대산을 오르는 등산로도 개발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산판을 다니는 트럭, 한때 우리나라 수출액의 상당량을 차지하던 상동중석광산의 차들과 버스들만 먼지를 날리며 다니는 길이었지만 이제는 고갯마루에서 조망하는 경치 또한 멋진 곳으로 변해서 예전 권력자에게 왕위를 내주고 쫒겨가면서 음식을 먹던 처량한 고개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더랍니다. 어쩌면 조선의 임금이 아닌 고려의 임금이었기에 더욱 잊혀져 가는 것일지도 모르구요. 단지 고갯마루를 알리는 표석옆에 그 유래가 적혀 있을 뿐이거든요.
세조에 쫒겨난 단종이 영월 입구 고개에서 소나기를 맞았다고 붙여진 소나기재는 많은 사람들이 그 유래를 알고 있지만요. 조선의 임금이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