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식들의 모음
하조대에 얽힌 두가지 유래......
노을진하늘
2003. 11. 26. 08:54
예전에는 서울에서 강릉을 가려면 상당한 시간 특히 피서철에는 말로 할 수 없는 짜증과 피곤 그리고 기대감을 길 바닥에 던져 가면서 가곤 하였죠. 하지만 요즘은 서울에서 강릉까지 3시간도 채 안걸리더군요. 참으로 길이 좋아졌죠.
오늘은 하조대라는 곳에 대해서 말씀드릴까 하구요. 강릉에서 7번국도를 따라 양양을 못미쳐 현북면 하광정리에 하조대 해수욕장을 만나게 되는데 해수욕장 입구에 하조대(河趙臺)를 알리는 커다란 간판이 있고요.
이 하조대는 해수욕장 오른쪽에 있는데 해안과 연한 기암절벽 바위 위를 지칭하는 것으로 하조대라는 현판이 걸린 작은 육각정도 있답니다. 하조대 해수욕장에서 우측 길을 따라 들어와 하조대 주차장에서 약 5분 정도 나무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하조대와 정자를 만날 수 있는데 기암절벽과 선돌 모양으로 옆에 나란히 서있는 커다란 바위들, 바위 틈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 그리고 바로 앞에 보이는 조도(鳥島)라는 바위섬과 섬의 정상 오른쪽에 푸른 소나무 한 그루가 남쪽을 향해 가지를 힘차게 내 뻗고 있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답니다.
정말이지 하조대 정자에서 20미터 정도 내려와 바다를 바라보았을 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너무 아름답더라구요. 좌측 벼랑위의 하얀 등대, 가운데 커다란 기암절벽과 해송 그리고 기암절벽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하조대 위의 작은 정자가......
관동팔경의 하나인 청간정(간성)이 모래 언덕위 대나무 숲 사이에 세워져 포근하고 아늑한 모습이라면 이 하조대는 기암절벽아래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와 소나무가 어우러져 장엄하고 수려한 모습으로 제 눈앞에 다가서 있어 하조대가 왜 관동팔경에 들어가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한 곳이랍니다.
하여간 어떤 곳이든지 다 이름에 얽힌 유래가 있듯이 여기 하조대에서 내력이 있답니다. 河趙臺 라는 명칭에서 보듯이 河씨 성과 趙씨 성을 가진 사람과 관련이 있는데 여기에도 두가지 유래가 있다네요.
첫째,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내력은 조선의 개국공신인 하륜, 조준 과 관련된 것으로, 고려말 신돈의 행동을 공박(지금은 신돈에 대한 인물평이 서로 대립하고 있지만)하면서 고려의 요동공략 불가를 내세우다가 양주지방에서 유배생활을 했던 하륜(河崙)과 최영장군의 휘하에 있다가 고려 우왕의 폐위를 도모한 조준(趙浚)이 고려왕조가 점차 회복할 수 없는 기미가 보이자 요즘 말로 시국에 대한 중대 결심을 하기 위해 풍광이 수려한 이곳에 내려와 머물다가 이성계가 고려의 마지막 왕으로 추대되어 보위에 오르자 떠나게 되었는데 후에 이 두사람의 성을 따서 하조대라고 부르게 되었다는군요.
두 번째 유래는, 지금의 하조대 근처 마을에 하씨 성을 가진 잘생긴 총각과 이를 사모하는 조씨 성을 가진 두처녀의 사랑에 얽힌 전설이었다네요. 하씨 총각은 두 조씨 처녀에게 같은 마음을 두었고(바람둥이 라기 보다는 어느 한쪽도 선뜻 택할 수 없었던 입장) 이런한 관계가 지속되다가, 어느 날 사랑의 선택으로 마음이 심란하던 세 사람이 이 바위 벼랑위에서 아래로 투신하였다네요...... 삼각관계 끝에 자살.....
하여간 그후부터 지금 하조대 해수욕장으로 바뀐 모래사장에는 유난히 붉은 해당화가 피어나게 되었고, 마을사람들은 하씨 총각을 사랑한 두 조씨 처녀들의 한이 꽃으로 피어 난 것이라 믿게 되었고 이들이 뛰어내린 바위절벽을 하조대라고 부르게 되었다는군요.
그리고 이러한 삼각관계에 얽힌 사랑의 전설로 한동안 하조대 바위 위에서 젊은 남녀가 키스를 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설도 있어 밤에 몰래 여기 찾아와 키스하는 남녀들도 많았다네요.
혹시 이 글 보시고 또 하조대에 찾아가려 마음 먹고 계신 분도 있을는지.....
이러한 전설을 담고 있는 하조대 육각정은 1939년에 건립되었다가 6·25 때 파괴된 것을 1955년에 재건한 것이고 주차장에서 하조대로 오르다보면 정자를 10여미터 못미쳐 우측에 있는 커다란 바위에 河趙臺라고 내려 쓰여있고, 또 정자 바로 앞 우측에 河趙臺라는 글이 옆으로 새겨져 있는 바위가 있답니다.
오늘은 하조대라는 곳에 대해서 말씀드릴까 하구요. 강릉에서 7번국도를 따라 양양을 못미쳐 현북면 하광정리에 하조대 해수욕장을 만나게 되는데 해수욕장 입구에 하조대(河趙臺)를 알리는 커다란 간판이 있고요.
이 하조대는 해수욕장 오른쪽에 있는데 해안과 연한 기암절벽 바위 위를 지칭하는 것으로 하조대라는 현판이 걸린 작은 육각정도 있답니다. 하조대 해수욕장에서 우측 길을 따라 들어와 하조대 주차장에서 약 5분 정도 나무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하조대와 정자를 만날 수 있는데 기암절벽과 선돌 모양으로 옆에 나란히 서있는 커다란 바위들, 바위 틈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 그리고 바로 앞에 보이는 조도(鳥島)라는 바위섬과 섬의 정상 오른쪽에 푸른 소나무 한 그루가 남쪽을 향해 가지를 힘차게 내 뻗고 있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답니다.
정말이지 하조대 정자에서 20미터 정도 내려와 바다를 바라보았을 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너무 아름답더라구요. 좌측 벼랑위의 하얀 등대, 가운데 커다란 기암절벽과 해송 그리고 기암절벽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하조대 위의 작은 정자가......
관동팔경의 하나인 청간정(간성)이 모래 언덕위 대나무 숲 사이에 세워져 포근하고 아늑한 모습이라면 이 하조대는 기암절벽아래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와 소나무가 어우러져 장엄하고 수려한 모습으로 제 눈앞에 다가서 있어 하조대가 왜 관동팔경에 들어가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한 곳이랍니다.
하여간 어떤 곳이든지 다 이름에 얽힌 유래가 있듯이 여기 하조대에서 내력이 있답니다. 河趙臺 라는 명칭에서 보듯이 河씨 성과 趙씨 성을 가진 사람과 관련이 있는데 여기에도 두가지 유래가 있다네요.
첫째,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내력은 조선의 개국공신인 하륜, 조준 과 관련된 것으로, 고려말 신돈의 행동을 공박(지금은 신돈에 대한 인물평이 서로 대립하고 있지만)하면서 고려의 요동공략 불가를 내세우다가 양주지방에서 유배생활을 했던 하륜(河崙)과 최영장군의 휘하에 있다가 고려 우왕의 폐위를 도모한 조준(趙浚)이 고려왕조가 점차 회복할 수 없는 기미가 보이자 요즘 말로 시국에 대한 중대 결심을 하기 위해 풍광이 수려한 이곳에 내려와 머물다가 이성계가 고려의 마지막 왕으로 추대되어 보위에 오르자 떠나게 되었는데 후에 이 두사람의 성을 따서 하조대라고 부르게 되었다는군요.
두 번째 유래는, 지금의 하조대 근처 마을에 하씨 성을 가진 잘생긴 총각과 이를 사모하는 조씨 성을 가진 두처녀의 사랑에 얽힌 전설이었다네요. 하씨 총각은 두 조씨 처녀에게 같은 마음을 두었고(바람둥이 라기 보다는 어느 한쪽도 선뜻 택할 수 없었던 입장) 이런한 관계가 지속되다가, 어느 날 사랑의 선택으로 마음이 심란하던 세 사람이 이 바위 벼랑위에서 아래로 투신하였다네요...... 삼각관계 끝에 자살.....
하여간 그후부터 지금 하조대 해수욕장으로 바뀐 모래사장에는 유난히 붉은 해당화가 피어나게 되었고, 마을사람들은 하씨 총각을 사랑한 두 조씨 처녀들의 한이 꽃으로 피어 난 것이라 믿게 되었고 이들이 뛰어내린 바위절벽을 하조대라고 부르게 되었다는군요.
그리고 이러한 삼각관계에 얽힌 사랑의 전설로 한동안 하조대 바위 위에서 젊은 남녀가 키스를 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설도 있어 밤에 몰래 여기 찾아와 키스하는 남녀들도 많았다네요.
혹시 이 글 보시고 또 하조대에 찾아가려 마음 먹고 계신 분도 있을는지.....
이러한 전설을 담고 있는 하조대 육각정은 1939년에 건립되었다가 6·25 때 파괴된 것을 1955년에 재건한 것이고 주차장에서 하조대로 오르다보면 정자를 10여미터 못미쳐 우측에 있는 커다란 바위에 河趙臺라고 내려 쓰여있고, 또 정자 바로 앞 우측에 河趙臺라는 글이 옆으로 새겨져 있는 바위가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