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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식들의 모음

울고 넘는 박달재는 천등산에 없고 다른 곳에 있는데......

천등산 박달재에 울고 넘는 우리 님아..... 아마도 관광버스나 예전에 유원지에서 아줌마 아저씨들이 즐겨 부르던 가요 '울고넘는 박달재'를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이 되어지네요. 그런데 여기서 박달재는 실제로 천등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아실런지?

충북 제천과 충주 사이에는 천등산, 지등산, 인등산이라고 하여 천지인(天地人) 삼등산이 있다는 말씀을 예전에 드린 기억이 있는데, 이 천등산으로부터 동쪽으로 약 20Km정도 떨어진 곳에 시랑산이라는 백운산의 줄기가 있는데 이 시랑산을 넘는 고개가 바로 박달재입니다.

이 시랑산은 해발 691미터이고 박달재는 해발 450미터인데 제천에서 충주를 가는 38번 국도에서 봉양을 지나 백운을 가는 사이에 이 시랑산과 박달재가 있고, 다시 백운을 지나 충주시 산척면으로 가는 길에 천등산이 있는데, 이 천등산에도 다랫재라고 불리우는 고개가 있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천에서 청주를 가는 길에서 이곳 천등산 다랫재만 확장공사가 아직 안된 것 같더군요. 이 다랫재라는 명칭은 이곳에서 다래넝쿨이 많아서 붙여졌답니다.

하여간 천등산 박달재이던 시랑산 박달재이던 박달재의 유래는 많이들 아시더군요. 옛날 박달이라는 도령이 과거를 보러가던중 평동마을(제천시 백운면 평동리)에서 금봉이와 만나 눈이 맞아 사랑을 나누게 되고, 박달 도령이 과거급제하면 함께 살기로 맹세하고 박달도령은 과거를 보러 갔으나, 자나깨나 금봉이 생각에 과거에 낙방하고 말았다네요.(한창 공부할 나이에 딴 곳에 정신을 팔았으니 공부가 되겠어요?) 과거에 떨어진 박달도령은 금봉이를 볼 낯이 없어 평동마을에을 가지 않았고, 박달도령이 돌아오기를 고대하던 금봉이는 상사병으로 한을 품은 채 죽고 말았다네요. 금봉이 죽고난 후 사흘만에 박달도령이 돌아오긴 하였으나, 금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땅을 치며 목놓아 울던중, 얼핏 고갯마루를 향해 너울너을 춤을 추며 달려가는 금봉의 모습을 보곤 그 뒤를 쫓아가 금봉이를 끌어 안는 순간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었다네요. 이런 연유로 이 고개를 박달재라고 하였다는데......
하여간 이 박달재는 1216년 고려의 김취려장군이 거란의 대군을 여기서 물리쳤다는 기록이 있고, 1268년 고려때 이 고장에 있던 별초군이 몽고의 군사를 막아냈다고 합니다.

지금은 38번 국도 확장 공사로 박달재 밑으로 터널(1,800여 미터 정도 이던가?)이 개통되어 박달재의 정취를 느낄 수는 없지만, 아직도 고개 정상에는 휴게소가 있어서 도토리묵(노래 가사에 있죠) 등을 팔면서 박달도령과 금봉이의 전설보다는 '울고넘는 박달재'라는 노래만 생각나게 계속 노래를 틀어 놓고 있답니다. 예전에 이곳을 버스를 타고 졸면서 지날 적마다 울고 넘는 박달재 노래소리가 들리면 아 박달재구나 하고 짐작하던 곳인데, 이제는 충주쪽에서 달려오다 터널을 지나면서 휑하니 뚫린 직선도로(약 2Km 정도)에 가끔씩 서있는 과속 단속 경찰차가 있나 없나 하고 저 멀리 갓길을 살펴 보는 곳이 되어 버렸네요.

사실 예전에는 제천에서 충주를 가려면 박달재 정상을 지나야 했기 때문에 보통 버스로 1시간 20분 정도 걸렸었고, 기차로 가면 40분 정도 걸렸기에 대부분 기차를 이용했었는데 이제는 터널도 생기고 하여 좀 나아졌죠. 하지만 이곳 백운에서 박하사탕 촬영지로 유명한 진소천이 있는 진소마을은 얼마전만 해도 상하행선 기차 지나가는 소리로 지금이 몇 시구나 짐작하는 오지 였었다는데 이제는 관광객들이 가끔씩 찾아오는 탓에 조금은 붐비는 곳이 되었다네요. 저도 박하사탕이란 영화를 인터넷을 통해서 보긴 하였지만 화면이 작은 탓에 잘 이해가 안되더군요.(머리가 나쁜가?) 하여간 백운면 소재지에서 진소마을까지는 약 10Km정도인데 곳곳에 표지판이 있답니다. 한번 이곳을 지나시는 길에 진소마을에 들려서 설경구처럼 철교위에 올라가서 소리를 질러보세요. 스트레스가 확. 그러나 철도법위반으로 벌금 내는 것은 책임을 못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