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상식들의 모음

이리 저리 옮겨 다니다 , 시멘트 덩어리로 다시 세워진 광화문

어제 8월 29일, 요즘은 무슨 날인가 기억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1910년 경술년 한일합방이 되던 날(경술국치일)이죠. 사실 유전학적으로 한국인과 가장 유사한 유전자를 가진 민족이 일본이지만 고래로 서로 도움을 주기 보다는 대립하는 모습이 더 많았던 같네요.

오늘은 일제하 조선총독부 건물의 시야에 방해가 된다고 이사를 하는 등 수모를 당한 광화문에 대해서 몇 마디 글을 적어 봅니다.

광화문은 현재 서울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경복궁(景福宮)의 남정문(南正門)인데, 경복궁은 북악산을 주산으로 태조 3년에 공사가 시작되어 1395년(태조 4년)에 궁궐로서 완성된 궁궐로, 궁성은 남북이 길고 동서가 짧은 장방형으로 정남에 광화문, 정북에 신무문(神武門), 동에 건춘문(建春門), 서에 영추문(迎秋門)을 세웠으나 광화문이라는 이름은 이때 붙여진 것 아니고 정도전이 경복궁 남문의 이름을 지었는데, "이 문을 닫아서는 괴이한 말을 하는 부정한 백 성을 거절하고, 이 문을 열어서는 사방의 어진 이를 오게 하리니 이것이 다 바르고 큰 것" 이라는 뜻으로 오문(午門)이라고 했었답니다.

태조 7년(1398년)에 궁성을 다시 쌓기 위하여 후에 대마도 정벌을 하였던 박위가 책임자로 임명되어 공사(확장공사)를 하던중, 태조가 정종에게 양위를 하면서 공사는 모두 중단되었엇다네요. 이듬해(정종 1년)에 재개하여 완성을 하였으나 정종이 수도를 개성으로 옮기면서 경복궁은 창고 또는 사고(史庫)로 이용되어 오다가 태종이 한양으로 수도를 다시 옮기면서 명나라 사신 접대용 건물로 이용되기도 하였답니다. 그러나 세종에 이르러 경복궁에 왕이 머물면서 궁궐로서의 본 모습을 갖추게 되고, 세종 8년(1426년) 10월에 각 문과 다리의 이름이 지었는데, 근정전 앞에 있는 제1문이 홍례문, 제2문이 광화문, 근정전의 동쪽 작은 문이 일화문, 서쪽이 월화문, 궁성 동쪽의 바깥문이 건춘문, 서편이 영추문으로, 근정전 앞 돌다리를 영제교라 하였답니다.

그후 경복궁은 수차례에 걸쳐 크고 작은 화재가 일어나 개, 보수하는 등 하다가 임진란 당시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북행을 하자 미처 도성을 빠져 나가지 못한 백성들에 의해서 궁궐이 불타 버리고 터만 남게 되어답니다.

이후에 수 차례에 걸쳐 경복궁을 복구하려는 노력도 있었으나 시도도 못하고 영조 48년(1772년)에 문소전 터에 비를 세우고 비각을 건립하는 것으로 만족하였다죠. 그러다가 고종 2년(1865년) 경복궁 중건이 시작되어 안동 김씨와 전주 이씨를 주축으로 요즘 말로 경복궁 중건 추진위원회를 만들면서 공사가 시작되어 1867년 8월 18일에 전각과 문의 이름들을 지었으며, 11월 8일에 완성된 건물의 당호(堂號)를 짓고, 1868년 7월 2일 고종이 새 궁궐로 이사함으로서 경복궁이 조선 왕조 정궐로서의 위엄을 갖추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1867년인가에 문무백관들이 경복궁 출입시 출입문 이용방법을 정하였다는데, 승지(承旨)는 영추문(서쪽)을, 문관은 정문인 광화문의 흥예문 중 동쪽문을 이용하게 하고 무관은 서쪽 흥예문으로 출입하도록 하였답니다.(광화문은 문이 하나가 아니라 중앙의 큰 흥예문과 좌우의 작은 흥예문 등 3개로 이루어져 있죠.)

하여튼 광화문은 일제하인 1926년 조선총독부 건물이 경복궁내 건립이 되면서 총독부 건물의 시야를 가린다는 이유로 해체되면서(아마 실제 이유는 서울의 주산인 북악의 정기와 안산인 남산의 정기를 끊기 위한 방법이라나요. 실제로 근정전에서 광화문을 통해 숭례문까지 일직선으로 볼 수 있었다던데) 경복궁 동쪽 건춘문 북쪽 담벼락으로 옮겨져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가, 제3공화국 때 원래의 자리로 옮겨져 세웠는데 놀랍게도 목재가 아닌 철근 콘크리트와 기둥과 서까래를 사용한 주먹구구식(군대식) 발상으로 재건되었답니다.

지금도 보면 단청을 하여 겉으로 보기엔 고풍스런 옛집이지만 그 속에 위장된 시멘트 덩어리(사실 시멘트로 지었다고 다 나쁜 것은 아니지만)를 생각하면 지난 시절 우리 정부의 문화재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일이 아닌가 싶네요. 그리고 광화문의 문도 본래는 나무로 된 문짝이었다는데 지금은 철판으로 바뀌어져 있답니다. - 철판이 더 튼튼 하겠죠.

하여간 이제 경복궁이 복원되어 제 모습을 찾게되면 속이야 어떻든 광화문도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그 위치를 되찾고 만족하겠죠. 하지만 그전에 경복궁내에 있는 이상한 건축물 투성이인 민속박물관도 마저 철거를 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