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난 번에 말씀 드린대로 영도다리와 이어져 있는 영도에 대해서 글을 올리죠. 부산 태종대 하면 아마도 가보신 분들도 많이들 계실텐데, 지도를 보면 우리나라와 일본의 대마도가 가장 가까운 곳이 태종대라고 합니다. 제가 학교생활을 하던 해운대에서도 맑은 날이면 대마도를 맨 눈으로 볼 수 있었거든요. 수평선 멀리 대마도의 산들이 보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농담삼아 빨래하는 여자들까지 보인다고 했으니......
전에 해운대라는 지명은 최치원의 호에서 시작되었다고 했었죠? 그런데 태종대라는 지명은 어디서 나온 줄 아시는지...... 태종대(太宗臺)라는 지명은 신라 제29대 임금인 태종무열왕이 한반도 남쪽을 신라의 땅으로 만든 후 전국의 명승지를 찾아 다니다가 이곳에서 아름다운 해안의 절경에 빠져 잠시 쉬면서 활을 쏜 곳이라 하여 나중에 태종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곳은 예로부터 가뭄이 있을 때 동래부사가 기우제를 지낸 곳으로 음력 5월 초열흘날에 오는 비를 태종무열왕과 연관지어 태종우(太宗雨)라고 한다네요.
이 태종대는 영도 최남단에 자리잡고 있으며 해발 250m정도의 작은 봉우리를 중심으로 삼면의 기암 절벽에 부딪히는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죠.
특히 영도 등대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면 등대 우측으로 신선들이 놀았다는 신선 바위와 왜구에게 끌려간 남편을 기다리는 망부석, 병풍바위 등을 볼 수 있답니다. 이곳을 지나 순환도로를 시계방향으로 돌다보면 모자상을 만나게 되는데 그 아래에 사람들이 자살을 많이 한다고 하여 붙여진 자살바위가 있고 그 근처에 구명사(救命寺)라는 절이 있었다던데 전 못봤거든요. 대신에 몇 년전에 태종대를 들렀다가 신선바위에서 실제로 자살하는 것을 목격하는 일도 있었답니다. 끔찍하죠.
또 이 태종대 앞에 작은 섬이 있답니다. 꼭 주전자 모습(옛날 주전자- 요즘처럼 잘생긴 주전자가 아니고)을 닮아 주전자섬이라고도 하는데, 원래 이름은 생도라고 하는 작은 돌섬이랍니다. 그런데 옛부터 이 섬에서는 용변 금지, 화기 사용금지, 그리고 남녀가 정을 나누어도 안된다는 세가지 금기사항이 전해지고 있다네요.
옛날 한 어부가 주전자섬에서 고기를 잡다가 갑자기 용변이 마려워 어구를 설치해 놓고 용변을 보았더니, 그 날부터 고기도 못잡고 어구만 계속 잃어 결국 홧병으로 죽고 말았으며,
또 다른 어부들이 추운 겨울에 고기를 잡다가 주전자섬에서 몸을 덥히려 불을 피웠는데, 그 때부터 이상하게 고기가 한 마리도 잡히지 않고, 꿈속에서 어부들은 주전자섬이 불덩어리로 변하는 것을 보았으며, 결국 불을 피웠던 어부들이 원인 모를 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네요.
세번째로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것을 "雲雨之情"이라 하는데, 이 섬에서 남녀가 사랑을 나누면 실제로 구름과 비의 조화로 벼락을 맞거나 큰 봉변을 당한다고 합니다.
하여간 이런 전설때문에 이 주전자섬은 낚시하러 사람들이 오긴 하여도 그냥 죽기 싫어서 그나마 환경보호가 잘되고 있다네요.
이 영도다리로 육지와 이어져 있는 영도의 원래 명칭은 절영도(絶影島)라고 한답니다. 옛날에 이 섬에 하루에 천리를 가는 천리마가 있었는데, 얼마나 빠른지 말 그림자가 끊어질 정도라고 하여 절영도라고 하였다는군요. 실제로 신라때부터 이곳에는 말을 키우는 곳이 있어 후백제 견훤이 왕건에게 이 섬의 명마 한 필을 선사했다는 기록이 동국여지승람에도 나온다더군요. 하기야 일제시대에는 일본인들이 牧島라고 불렀으니, 여기서도 그 유래를 찾을 수 있겠네요.
참 예전에 영도와 송도사이의 바다를 매립하여 삼각형 모양의 인공섬을 만들고 영도와 인공섬, 그리고 다대포 쪽으로 이어지는 다리를 놓겠다고 난리들 치더니 소식이 없네요. 그걸 계획하는데도 많은 돈을 썼을텐데......
또 하나, 태종 무열왕은 다들 아시죠? 그런데 신라의 임금들이 ㅇㅇ왕으로 불리우는데 무열왕은 앞에 붙은 태종이라는 말은 임금이 죽은 뒤에 붙여지는 묘호(廟號)랍니다. 그뒤에 붙은 무열은 시호이고요. 묘호에 대해선 종묘에 대한 글을 쓰면서 언급한 것 같은데, 다음 주에는 묘호와 시호 등에 관해서 다시 한번 글을 올려 보기로 하죠. 사실 삼국사(삼국사기 - 원래 이름은 삼국사) 신라본기에 신문왕이 선왕의 묘효를 태종이라 한 것에 대해 당나라 중종이 자신들의 조상인 태종 문황제의 묘호를 사용하였다고 분수에 넘치는 짓을 한다면서 사신을 보낸 적도 있었다네요. 사실 고구려 초에도 태조왕(6대)이 있었거든요. 그러고 보면 당나라 보다 우리가 먼저 이런 묘호를 사용한 것 같은데...... 하여간 당나라 군대들 같으니(군대 갔다 오신 분들은 아시죠?)
전에 해운대라는 지명은 최치원의 호에서 시작되었다고 했었죠? 그런데 태종대라는 지명은 어디서 나온 줄 아시는지...... 태종대(太宗臺)라는 지명은 신라 제29대 임금인 태종무열왕이 한반도 남쪽을 신라의 땅으로 만든 후 전국의 명승지를 찾아 다니다가 이곳에서 아름다운 해안의 절경에 빠져 잠시 쉬면서 활을 쏜 곳이라 하여 나중에 태종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곳은 예로부터 가뭄이 있을 때 동래부사가 기우제를 지낸 곳으로 음력 5월 초열흘날에 오는 비를 태종무열왕과 연관지어 태종우(太宗雨)라고 한다네요.
이 태종대는 영도 최남단에 자리잡고 있으며 해발 250m정도의 작은 봉우리를 중심으로 삼면의 기암 절벽에 부딪히는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죠.
특히 영도 등대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면 등대 우측으로 신선들이 놀았다는 신선 바위와 왜구에게 끌려간 남편을 기다리는 망부석, 병풍바위 등을 볼 수 있답니다. 이곳을 지나 순환도로를 시계방향으로 돌다보면 모자상을 만나게 되는데 그 아래에 사람들이 자살을 많이 한다고 하여 붙여진 자살바위가 있고 그 근처에 구명사(救命寺)라는 절이 있었다던데 전 못봤거든요. 대신에 몇 년전에 태종대를 들렀다가 신선바위에서 실제로 자살하는 것을 목격하는 일도 있었답니다. 끔찍하죠.
또 이 태종대 앞에 작은 섬이 있답니다. 꼭 주전자 모습(옛날 주전자- 요즘처럼 잘생긴 주전자가 아니고)을 닮아 주전자섬이라고도 하는데, 원래 이름은 생도라고 하는 작은 돌섬이랍니다. 그런데 옛부터 이 섬에서는 용변 금지, 화기 사용금지, 그리고 남녀가 정을 나누어도 안된다는 세가지 금기사항이 전해지고 있다네요.
옛날 한 어부가 주전자섬에서 고기를 잡다가 갑자기 용변이 마려워 어구를 설치해 놓고 용변을 보았더니, 그 날부터 고기도 못잡고 어구만 계속 잃어 결국 홧병으로 죽고 말았으며,
또 다른 어부들이 추운 겨울에 고기를 잡다가 주전자섬에서 몸을 덥히려 불을 피웠는데, 그 때부터 이상하게 고기가 한 마리도 잡히지 않고, 꿈속에서 어부들은 주전자섬이 불덩어리로 변하는 것을 보았으며, 결국 불을 피웠던 어부들이 원인 모를 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네요.
세번째로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것을 "雲雨之情"이라 하는데, 이 섬에서 남녀가 사랑을 나누면 실제로 구름과 비의 조화로 벼락을 맞거나 큰 봉변을 당한다고 합니다.
하여간 이런 전설때문에 이 주전자섬은 낚시하러 사람들이 오긴 하여도 그냥 죽기 싫어서 그나마 환경보호가 잘되고 있다네요.
이 영도다리로 육지와 이어져 있는 영도의 원래 명칭은 절영도(絶影島)라고 한답니다. 옛날에 이 섬에 하루에 천리를 가는 천리마가 있었는데, 얼마나 빠른지 말 그림자가 끊어질 정도라고 하여 절영도라고 하였다는군요. 실제로 신라때부터 이곳에는 말을 키우는 곳이 있어 후백제 견훤이 왕건에게 이 섬의 명마 한 필을 선사했다는 기록이 동국여지승람에도 나온다더군요. 하기야 일제시대에는 일본인들이 牧島라고 불렀으니, 여기서도 그 유래를 찾을 수 있겠네요.
참 예전에 영도와 송도사이의 바다를 매립하여 삼각형 모양의 인공섬을 만들고 영도와 인공섬, 그리고 다대포 쪽으로 이어지는 다리를 놓겠다고 난리들 치더니 소식이 없네요. 그걸 계획하는데도 많은 돈을 썼을텐데......
또 하나, 태종 무열왕은 다들 아시죠? 그런데 신라의 임금들이 ㅇㅇ왕으로 불리우는데 무열왕은 앞에 붙은 태종이라는 말은 임금이 죽은 뒤에 붙여지는 묘호(廟號)랍니다. 그뒤에 붙은 무열은 시호이고요. 묘호에 대해선 종묘에 대한 글을 쓰면서 언급한 것 같은데, 다음 주에는 묘호와 시호 등에 관해서 다시 한번 글을 올려 보기로 하죠. 사실 삼국사(삼국사기 - 원래 이름은 삼국사) 신라본기에 신문왕이 선왕의 묘효를 태종이라 한 것에 대해 당나라 중종이 자신들의 조상인 태종 문황제의 묘호를 사용하였다고 분수에 넘치는 짓을 한다면서 사신을 보낸 적도 있었다네요. 사실 고구려 초에도 태조왕(6대)이 있었거든요. 그러고 보면 당나라 보다 우리가 먼저 이런 묘호를 사용한 것 같은데...... 하여간 당나라 군대들 같으니(군대 갔다 오신 분들은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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